시간은 남았는데 영풍까지 이 칼바람과 맞짱뜨며 걸어갈 자신이 없어 지하도로 에릭케제르 가서 에끌레르랑 크렘브륄레 먹었음. 사실 맛으로만 평가하자면 에끌레르는 기욤이나 페이야드가 더 나은데 가성비를 고려하자면 에릭케제르도 나쁘지 않다. 특히 페이야드는 가격이 너무 애미없고 기욤은 사이즈가 고자임. 함께 먹은 크렘브륄레는 가격, 양, 커스터트 크림의 당도, 바닐라 풍미, 표면의 슈거코팅 등등 여러 각도에서 살펴봐도 단연 수준급임. 발효빵도 기욤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것도 있음. 여의도가 1호점 오픈했을 땐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서 빵 투어 필수 코스였지만 이젠 갤러리아에 입점해 접근성이 대폭 개선되었지만 동시에 신비감이 떨어진 비운의 베이커리
스스로 3무(개그 없음, 크리스마스 이벤트 없음, 댄스 없음) 컨셉이라 소개하신 조규찬 콘서트 다녀왔음. 아시는 분이야 다 아시겠지만 조규찬은 직구 안 던집니다. 그래서 웃음을 노린 노골적 멘트나 예능 욕심에 점철된 어설픈 개인기는 선보이지 않았지만 객석에선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질 않았음. 특히 '서울하늘'이 마이너의 전설로 남아 메이저 리그에 등판하지 못한 이유를 침묵의 나선 이론에 빗댄 비유가 아주 ㅋㅋㅋㅋㅋㅋ 딱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조규찬 그 자체였음. 오늘은 오라방 컨디션도 좋아보였음. (하긴 공연일 중 가장 괜찮았던 오늘의 티켓 판매율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전체적인 편곡의 분위기나 선곡 비중이 '달에서 온 편지'의 연장선에 있다고 느껴질만큼 주류를 이루었고 그에 더해 9집과 3집의 수록곡을 일부 추가해 어쿠스틱, 보사노바 풍으로 새롭게 편곡해 추가했다. 역시나 조규찬의 화성 전개 감각은 탁월했고 탁월했음. 몇몇 편곡은 원곡 못지 않은 포스를 선보임. c.f 는 라라라에서 보여줬던 편곡과 매우 유사했는데 본래 그 버전이 팬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아주 좋았었음. 내 아이팟에도 영상이또요. 상어, 용기있는 자만이 미인을 차지한다도 원곡의 실험적인 느낌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곡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중간에 세션 소개를 위해 잼 형식을 구성해 솔로 파트를 삽입한 상어는 원곡의 기괴하면서도 파괴적인 사운드 질감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어 새로운 곡이라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4명의 세션을 소개했는데 그에 더해 보컬-조규찬을 추가했어야 한다고 봄. 양념 좀 치자면 보컬과 세션의 경계를 가르기 애매할 정도. 목소리도 악기라는 본인의 철학 세간에 전파할 때 자기 예시로 활용하기 적절함. 리메이크 앨범의 인디언 인형처럼을 들어보면 셀프 예시라는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거다. 근데 스캣할 때 코평수 넓어지는 버릇도 여전하더군 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용기있는 자만이 미인을 차지한다는 3집 수록곡인데 2집 수록곡이라고 소개했다. 그 곡이 콘서트에서 부른 달라진건 없지만 바로 뒷 트랙인데 뒷 트랙은 틀리고 앞 트랙은 제대로 설명하다니 오빠도 이제 치매인가요? 그래, 난 조규찬이야. 내가 해요. 오빠도 하루에 양치 12번함?
몇 안 되는 준히트곡 메들리도 빠질 수 없지. 서울하늘, 말해줄께, 믿어지지 않는 얘기, 무지개도 당연히 세트리스트에 포함됐다. 앞선 세 곡은 평소에도 자주 듣는 애청곡인데 라이브를 들으니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이 배가돼 감정이 많이 흔들렸다. 물론 감정선이 유난히 요동친 이유는 어디까지나 라이브가 훌륭했기 때문이지 크리스마스에 남자 사람 없이 홀로 조규찬 공연 따위에 와서 시간을 때우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
커플과 여덕이 4:6정도로 혼재된 이도저도 아닌 기묘한 관객 구성이었는데 공연자의 데뷔 년도와 2005년대 이후의 전무한 히트곡 덕분에 여성 관객 중에서도 30대의 비율이 압도적이었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과반수 이상의 30대 여성이 동성 동반인과 함께였다는 재미없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여. 그리고 공연장 입구에 놓여있는 드리미를 보고 새삼 미미하지만 활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팬클럽의 존재를 자각하며 최강창민 근황이 궁금해졌음. 오빠는 여전하시죠? 연말이면 곧 브라운관에서 뵐 수 있겠죠. 여전한 볼륨감 자랑하는 슴근육으로 오빠의 건강과 동방신기의 건재함을 만천하에 보여주세요.
게스트나 잡기 없이 순도 100% 음악만으로 공연을 채운 조규찬의 고집에 감탄하고 여전히 녹슬지 않은 감각과 실력에 경탄하며 이렇게 좋은 공연의 판매율이 부진한 현상에 아쉬움을 금치 못한 채 31일자로 한 번 더 볼까 밀린 장바구니 결재나 할까 갈 곳을 잃은 77000원의 행방을 졸라 심각하게 고민하며 집으로 돌아왔음.

